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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5-03-10

할머니 제가 왔심뎌
셋째놈 우리 강생이 천재동이
이래 늦게 찾아 왔심뎌
가솔들 거느리고
모처럼 넉넉한 연휴를 맞아
이렇게 찾아뵈오니 굽어 살펴주십시오


정월대보름 둥근 달 동산에 떠오르면
하이얀 사발에 정한수 가득 떠서
도리판에 올려놓고
우리 식구 아홉식구 하나 하나 들먹이며
기원 축수하시던 정성스런 우리 할매


정면에는 옥두봉 달이 뜨는
동쪽으로 부수산이 다라리를 안아주고
비단 병풍처럼 다소곳이 들어찬
단봉산 영봉이 서녘에서 황강을 감싸들고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가
천하명당 십승지지
우리동네 잣뫼마을
덕유산을 시발점으로 굽이쳐 흘러오는
황강이 명경지수를 이룬다


옥두봉 정혈자리에 조용히 누워계신
할머님 무덤 앞에서
5형제 중 꿀단지 한가운데 손자
60년 전 초립동 시절 회상해본다


위로 형님들은
머리가 굵어 쑥스러워 못가겠다
아래로 동생 둘은
어려서 애처로와 못데려가고
결국은 어중이 중간놈으로 난 내가
광주리에 떡이며 전부침 동동주 담아
용왕 메우러 가는 할머니 뒤를 따라
황강변 언덕에 이르면
어느새 기별을 들었는지
고기냄새를 맡았는지
까막까치떼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동리아낙네 할머니들 각양각색 기원문은
분별없이 낭송된다


우리 쉰세살 대주양반 동서남북 다 댕겨도
인재 관재 물리치고 찾아가는 곳곳마다
순풍에 돛단 듯이 만사형통 도와주소
우리 열세살 먹는 군자방신
(옮지, 내 차례가 왔구나!)
하나 보면 열을 알고 안에 들면 효자둥이
밖에 날 때 친구사랑 구름 같이 모여들고
여름이면 물에 놀고 겨울이면 뜰에 놀제
영험하신 용왕님, 우리 군자 지켜주소


반백년 훨씬 지난 오늘 가만히 생각하면
하나하나 지난 일들
할머니 기원 축수 용왕님 영험인가?
구국일념으로 값지게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던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다만 부정부패 지나치게 옹고집 피우다
한직으로 밀려난 일
옳지 못한 기만 술수로
나라를 얻은 주나라 곡식은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꺾어먹고 살다
결국은 굶주려 죽었다는
백이숙제 일생을 시름시름 되돌아 본 일이
어찌 한두번이겠는가?


악한 사람 조정에는 스스로 멀리하고
부정불의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소부 허 유 닮은 초연한 인품
요소요소 자리하고 있는
청백리 아직도 건재하다
지나간 일 왈가왈부 따지기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는가?


한번 밉게 본 사람
계속 같은 눈으로 대하는
골수에 맺힌 구태를 벗는 해탈심으로
청정한 황강물에 정갈하게 씻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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