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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08

​​합천군은 유림의 고장이다. 이 기풍으로 지난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을 대규모로 이끌어내기도 했고, 지금도 향교를 중심으로 이어가고 있어 그 바탕이 되는 유학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성리학은 태극론, 이기론, 심성론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그 발전과정은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선진 시대의 유학, 진나라 이전의 유학을 말하는데, 이 시기에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중심에 높고 이론보다 실천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두 번째 시기는 한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는 시기로, 유교, 불교, 도교가 서로 혼합되며 발전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유학은 훈고학을 중심으로 발달하며 과거시험에는 인정되었을 뿐 학문의 측면에서는 침체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시기는 북송시대 성리학의 시대로 유학이 이론적으로 체계가 정립되고 화려하게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네 번째 시기는 청나라 때로 실학 즉 고증학이 발달하고 실사구시의 학풍이 일어났다.

전국시대의 맹자는 여민동락을 주장했으며, 인의 이름을 빌어 힘으로 다스리는 패도정치를 배척하는 주장을 했으며, 그 왕정에는 혁명론까지 주장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BC221년)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폐허가 되니 많은 유학자들이 진시황제를 공격해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하는 분서갱유 사건을 통해 유교가 침체되었다.

이후 한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불교와 도교가 들어오며 유교는 겨우 명맥을 이어가다 당나라 말기에 부흥운동이 한유와 이고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고는 당, 송의 팔대가 중 한 사람으로 불교를 반대하고 유교를 부흥시키고자 노력했으며, 유교의 도통에 대해서도 체계를 잡았다. 이고는 한유와 동시대 인물로 <중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풍을 열어주었고, 이들의 뒤를 이어 송대의 유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송나라 시대에 들어와 성리학자 주돈이, 장재, 소옹, 정호, 정이 다섯 명의 성리학자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성리학의 새로운 이념 체계정립에 기여했다. 이들의 학설을 집대성해서 이론체계를 정립한 학자는 북송의 주희다.

송나라 때 성리학이 발흥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대부 계층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문 풍토이다. 사대부 계층은 송나라의 학술의 존중정책과 맞물려 활발하게 학문의 발전에 큰 몫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송나라 성리학자 다섯 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우열 합천한문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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